2012/09/18 19:26

<늑대아이> - 어른들을 위한 성장동화 영화


애니메이션 <늑대아이>(2012) ★★★☆


#1. 또 <늑대아이> 얘기냐고 할 정도로, 이 영화가 개봉한 이후 지난 며칠동안 이글루스에는 <늑대아이>에 관한 수많은 포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어머니와 자식간의 '모성애'에 초점을 두고, 자녀들 특히 아메의 선택을 마치 어머니에 대한 배신인양 서술하고 있어요. 저는 그러한 평가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종국적인 화두를 '정체성'과 '성장'으로 놓고 볼 때, <늑대아이>의 서사적 구성이 의미하는 바를 좀더 명확히 알 수 있으며 결말에 대한 보다 완결성있는 해석이 가능할 테니깐요.
  

#2.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에서 기본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양육'입니다. 지금까지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다루는 소재는 아니었던 육아의 문제을 통해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부모와 자녀 각자가 성장하며 자신의 정체성 내지 세계관을 확립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늑대인간' 이라는 특수한 상황 및 시골의 환경적 요건을 설정하여 이러한 과정을 선명하게 부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늑대아이>의 주제의식을 고려해볼 때, 이 영화는 가족 애니메이션 혹은 아동 취향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성장동화라 보는 편이 더 타당해요. 실제로 이 영화에서는 꽤나 직접적인 수간장면을 묘사하고 있으며, 국내에서 더빙판을 따로 제작하지 않고 자막 버전만을 상영하고 있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3.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가운데 늑대인간은 유일하게 이름이 나오지 않고 단지 "그"로 불릴 뿐입니다. 이에 대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한 인터뷰(http://extmovie.com/zbxe/special/3186747)에서 인간의 고독이나 외로움을 지닌 보편적 존재로서 일종의 감정이입을 위한 대상으로 삼아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성장의 관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와 유키, 아메가 각각 자신들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반면 "그"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 속에서 머물러있는 존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이름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4. 그와 다르게 이 작품에 나온 하나는 측은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가 남긴 사진 한장 속의 풍경에 의지해서 평생 가볼 일도 없었을 깡촌에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내려가서 갖은 고생을 하는 장면은 영화 <밀양>의 전도연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녀보다 훨씬 불쌍해요. 하지만 하나는 그 속에서도 일련의 성장을 합니다. 처음 아이들을 기르고 폐허에 가까운 집을 수리하고 농사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가 가장 의존했던 것은 책이라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에요. 그러나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그들의 연륜과 경험에서 배움을 찾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학습체계는 암묵지(tacit knowledge)로 점차 전환해갑니다. 즉, 시골로 내려가기까지의 과정이 "그"의 그늘에 머물러있던 것이라면, 그 곳에서 나름의 삶의 터전을 일구고 커리어를 쌓으며 자녀들의 정체성과 선택을 존중할 수 있게 된 것은 대학생이던 하나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도 유키, 아메와 같이 성장하는 하나의 주체이며, 자녀들이 비교적 이른 나이에 각자의 삶을 향해 독립하면서 다시 하나가 혼자 남게 된 것 역시 자녀들처럼 하나도 자신의 삶의 방향을 확립했음을 나타내는 방증이라 할 수 있어요.


#5. 첫째인 유키, 그리고 둘째 아메의 성장과정 및 둘의 상반된 선택을 묘사함에 있어서 인간세상과 자연세계를 다루는 시각과 비중이 공정하지 못함을 불평하는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이러한 의견들을 완전히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마는, 저는 여기에서 유키가 인간의 삶을, 아메가 늑대의 삶을 선택하는 과정이 나름의 납득할 근거를 갖추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극 초중반에는 어린 유키가 늑대로 변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하면서 늑대와 유사한 유키의 사나운 성격이 상대적으로 보다 강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유키가 학교와 보육소에 다니기 시작하자 유키의 활발한 성격으로부터 사교적인 면이 부각됨과 동시에 또래집단인 인간과의 많은 상호작용을 경험하지요. 그와 같은 빈번한 인간적 교류를 통해 유키는 차츰 동물적 습성을 버리고 인간의 길을 선택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키의 친구인 소헤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겠죠.


반면에 아메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아메는 줄곧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로 표현됩니다. 유키가 보육소에 보내달라고 하나를 조르고, 학교에서 또래아이들처럼 행동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동안 아메는 조용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현저히 낮은 수준의 사회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두 교실을 수평적으로 비추면서 유키와 아메가 좌우 교실에서 각각 상반된 태도로 수업을 듣고 진급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는 꽤 정성스럽게 묘사되어 있는데요. 이 장면은 다름 아니라 인간세계에 대한 아메의 부적응성을 나타내는 데 치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키와 아메의 성장과 정체성의 확립에 대한 묘사의 비중이 절대적인 양적 측면에서는 불균형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는 두 자녀가 인간과 자연 양극단의 세계를 인지하고 그에 동화하는 선택의 과정에서 어느 한쪽도 불충분하게 표현되지 않았음을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덧글

  • lise 2012/09/19 11:12 # 답글

    저도 이 영화는 어머니의 모성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자라고 성장해서 어머니의 곁을 떠나가는 것이 주된 테마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키는 기숙사에 가는 식이긴 했지만, 두 자식 모두 어머니인 하나이 곁을 떠나갔으니까요. 글 잘봤습니다.
  • 허시만 2012/09/19 13:09 #

    사람들은 20살이 넘도록 부모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유키와 아메는 중학교에 진학하기도 전에 독립하는 것이 사람과 다른 늑대인간의 특성인가 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성장의 관점에서 자녀들의 독립으로 맺어진 결말이 구조적으로 일관성있고 완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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