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5 11:58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 알싸하면서도 까칠까칠한 영화


영화 <청포도 사탕: 17년 전의 약속> ★★☆


#1. 영화 <청포도 사탕>에 나오는 선주(박진희)는 결혼을 30여일 앞두고 애인인 지훈(최원영)과 동거중입니다. 영화 제작과 관련된 일을 하는 지훈은 새로운 장편영화를 준비하면서 최근 주가가 올라가 있는 작가 소라(박지윤)와 함께 작업을 진행해요. 선주는 소라의 존재에 관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데, 이는 단순히 여자의 직감에서 비롯되었다거나 완전히 실체가 없는 불안감은 아닙니다. 거기다가 왠걸, 선주와 소라는 알고보니 가까운 절친 급으로 학창시절을 같이 보냈던 중학교 동창이며, 둘 모두 서로가 처해있는 포지션 및 상황을 비교적 빨리 파악하게 됩니다.


#2.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이 영화는 결혼을 앞둔 두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외도와 그에 대해 의심하고 대처하는 여자에 관한 서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이 이 영화가 다루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님이 밝혀집니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이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선주와 소라가 함께 중학교를 다녔던 시절인 17년 전의 과거에 발생한 어떠한 하나의 사건이에요. 그리고 그 사건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선주와 소라를 포함한 관련 인물들의 현재적 삶까지도 지배하고 간섭하며 규정짓는 것으로 보입니다.


#3.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과거의 사건과 맞딱드리기 시작하는 이 영화의 중반부 이후의 흐름은 그 일의 실체 및 의미를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통해 현재의 인물들이 오랫도안 품고 있었던 절망과 고통의 치유 내지 해방의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영화는 이 두 가지 기능을 그리 잘 해내지 못해요.

예쁜 학교의 풍경 속에서 어린 배우들이 연기하는 과거의 회상신들은 풋풋하기 그지없지만 과거의 사건에 관한 단면들을 불연속적으로 보여줄 뿐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양상과 감정을 심도있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마치 독일의 공법학자 포르스트호프가 "행정은 묘사할 수는 있으나 정의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 것에서 '행정' 대신 17년 전의 과거를 치환해서 생각해보면 "과거를 플래시백 장면으로 묘사할 수는 있어도 정의할 수는 없다."는 말이 성립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부실한 기초 위에 놓인 현재 시점의 행동양상은 과거의 일들에 대해 집착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는 두 분류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모두 공허하고 모호하기만 합니다. 이는 그 이전까지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으로 잘 빠진 허진호 감독의 영화같았던 이 영화가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어법과 대화체 등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매체의 방식이 급격하게 촌스러워지고 깔끔하지 못하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듯 합니다. 특히 극중 소라가 다른 사람들과 연극투의 어색한 말투로 대화하는 장면이 중반 이후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이것이 소라의 직업이 작가임을 강조하기 위한다거나 하는 의도성있는 연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배우들의 대사와 표정이 어색하고 나빠 보여요.

이러한 이 영화의 단점들이 가장 크게 부각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작중 인물들이 하나의 매개물의 난데없는 등장을 통해 일종의 구원을 받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이 영화가 17년 전의 그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그런 식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마무리는 부당합니다. 거기다가 저는 선주가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도 끝내 구원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인공이 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내용의 드라마가 대체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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