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28 22:10

<화이팅 패밀리> - 임신이 축복이 아닌 현실의 비극 영화


영화 <화이팅 패밀리>(2012) ★★


#1. 먼저 "화이팅 패밀리"라는 영화 제목부터 얘기를 해야겠군요. 저는 이 제목이 마음에 들지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어느 한 가족 혹은 가족구성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다 거시적인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해보아야 할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총체적 성격의 문제 중 어느 하나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더러 힘을 내라고 격려를 하거나 채찍질을 가하는 것은 그들에게 그러한 문제의 발생원인 내지 책임소재를 떠맡기는 것만큼이나 무용하고 부적절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위기에 처해있는 모든 가족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위한 고귀한 뜻이 숨겨져 있는 제목이라 칩시다.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쓴 책 <긍정의 배신>의 중요한 시사점들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한국어 어문상으로 '화이팅'이라는 표기는 말이 안됩니다. 또다시 우리가 흔히 응원문구로 쓰는 'fighting'이라는 단어가 콩글리쉬라는 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 제목을 솜털만큼이라도 인정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논의대상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하든가 별론으로 두어야 합니다!) 이를 '파이팅'으로 읽고 씀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이 공식입장이며 4대 어문규정 중에 하나인 외래어표기법을 제대로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같은 /f/ 발음인데 'family'는 '패밀리'로 잘 적었으면서 'fighting'은 '화이팅'으로 잘못 표기하는 것이 무슨 경우랍니까.  일상적으로 우리가 '화이팅'을 사용한다는 주장은 여기에서 고려대상이 되지 않아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최근에도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의 제목 변경을 놓고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작품의 내용상, 정서상 의도성이 분명하여 불가피하게 맞춤법 규정과 다른 제목을 내건 영화 <말아톤>과 같은 사례가 아니라면, 예술창작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어문규정을 준수한 제목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굳이 인터넷 상의 맞춤법 지적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언어생활면에서는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매체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는 만만찮다고 생각해요.

 


#2. <화이팅 패밀리>는 임신과 출산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40~50분 가량의 중편 두 작품을 모아 만든 영화입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인 저출산이라는 소재의 공통점은 있지만, 두 중편은 표현방법과 접근방식이 다르고 주제 및 초점도 상이합니다. 뿐만 아니라 완성도 면에서도 격차가 있으니, 흔히 하는 옴니버스 영화에서 꼭지간 완성도가 들쑥날쑥하다는 평가가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유효한 편이예요.

보건복지가족부와 인구보건복지협회 등에서 제작 지원을 받았다고 하는데, 다행이도 촌스럽게 캠페인을 벌이려고 하거나 관객들을 계도하려는 기미는 없어요. 적어도 첫번째 중편에서는 그렇습니다. 두번째 작품에서는 그와 비슷한 낌새가 엿보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제작 지원과 관련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감독이 의도한 바를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해 발생한 어색하고 어설픈 장면이 아닌가 해요.



#3. 첫번째 꼭지는 김성호 감독의 <인 굿 컴퍼니> 입니다. 이 중편은 드라마 <더 오피스>와 같은 모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아주 신랄하고 냉혹한 버전의 <더 오피스> 같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형식의 차용은 모순적이며 구조적인 사회현실을 비꼬는데 제격입니다. 기본적인 이야기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출판사에서 출산을 코 앞에 앞둔 임산부 직원을 권고 사직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주변에는 노동법에 반하는 부당한 조치라며 집단행동을 벌이는 동료 여직원들과 그에 동조하지 않는 한 명의 여직원, 그리고 사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사직의 압력을 넣을 수밖에 없는 남자팀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 이것이 결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현실을 앞세워 사보타주에 동참하지 않은 사원은 야근을 하느라 보육원에 맡긴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하고, 팀장이 사직을 권고한 출판사의 여직원과 마찬가지로 만삭의 몸인 팀장의 아내는 보육원에서 일을 하며 밤늦게까지 부모가 데리러 오지 않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식이죠. 주인-대리인의 관계가 얽히고 섥히는 가운데 어느 한 부분만을 떼어내어서 해결하기란 쉽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는 구조적 문제를 타개하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얽혀있는 문제들을 개선하거나 풀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 중편이 별다른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이 꼭지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임신과 양육의 문제에 대한 냉소적이며 비장하기까지 한 사실적 묘사에 지나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 속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더이상 임신이 축복이 아닌 현실의 비극을 재확인하는 일만으로도 <인 굿 컴퍼니>는 충분히 제 임무를 다했으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4. 이어지는 꼭지는 구상범 감독의 <해마 가족> 입니다. 바닷물고기인 해마는 암컷이 알을 낳지만 수컷에게 육아낭이 있어서 육아낭 안의 알들을 키운 다음 출산을 하는 것은 수컷의 몫이라고 해요. <해마 가족>에 나오는 부부의 경우 경제력이 있는 것은 홈쇼핑 방송의 호스트가 직업인 여자 쪽인데, 최근 둘째 아이를 임신해서 일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에서 놀고있는 무능한 남편은 마치 해마의 수컷처럼 자신이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꿈 속에서 그와 같은 상상을 하는 장황한 장면이 나오는데, 불필요할 정도로 길게 계속될 뿐만 아니라 딱 봐도 이러한 설정은 말이 안됩니다.

이 중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임신과 양육의 문제를 어설프게 하나로 묶고 있다는 점입니다. 설령 남자가 해마가 된다 하더라도 해결되는 것은 당면한 임신의 문제일 뿐 그 보다 더 부담이 중한 양육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런데도 남자는 양육에는 별 관심이 없고 집안일도 하지 않으면서 둘째 아이와 본인의 취직을 간절히 희망하는 모순적이고 한심한 행동을 합니다. 다시말해 이 꼭지에서는 임신과 양육의 문제를 동시에 얘기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부부간의 관계를 해마에 비유하는 설정이나 남자가 해마의 수컷처럼 노력하면 된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부적합하고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겁니다.


덧글

  • ... 2012/09/28 22:54 # 삭제 답글

    늑대아이는 다 개구라라는 거여

  • 허시만 2012/09/29 01:33 #

    요즘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더 트리>라는 영화를 봐도, 남편이 사망한 후 남겨진 부인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과 절망의 나날 속에서 살아야하는지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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